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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시장조사차 원저우(溫州)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6월 21일 8시 40분차를 타러 가기로 하고 아침을 먹고 30분 전에 터미널에 도착했더니 벌써 좌석이 만석이다. 다음 발차인 9시20분 걸로 예매를 하고 터미널 근처 한식당으로 향했다. 간판에 개장이라고 적혀 있는 걸 착각해 게장을 시키려고 했더니 메뉴판에 모두 개장밖에 없다. 보신탕을 교포들은 그렇게 칭한다고 한다. 김치찌게 한그릇을 비우고 원저우 가는 버스에 올랐다. 입구에서 생수를 무료로 서비스는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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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에서 원저우로 가는 버스. 아스팔트 색이 짙은 게 길이 난지 몇년 되지 않은 것 같다. | |
아스팔트가 검고 중앙선 색이 짙은게 길이 생긴지 몇년이 되지 않은 듯 싶다. 버스 흔들림이 적어 승차감이 좋았다. 산이 높아 가는길에 터널이 많았다. 터널은 한국보다 길고 좁고 어두웠다. 긴 터널은 빛이 들어오는 끝이 보이지 않아 마치 앞에 막혀 있는 곳을 동굴 속을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터널을 빠져 나온 후 강을 따라 달리는 기분이 상쾌했다. 강에는 드문드문 배가 떠 있고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알수 없는 물체도 간간이 보였다. 나룻터같기도 하고 채석선이 사금을 캐는 것 같기도 했다.
산이 높고 강이 넓은 게 주황산을 끼고 강이 흐르는 경북 청송과 닮았다. 하긴 KBS에서 한중수교 15년을 기념해 특집으로 방송한 다큐멘터리에서도 원저우는 버려진 유배지라고 표현했으니, 장기 죄수들의 감호소인 청송과 그 부분도 닮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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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창가로 보이는 강가에 드문드문 배가 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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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루터인지, 사금을 캐는 채석선이지 아니면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지 알 수 없는 미확인물체. | | 4시간이 조금 안 걸린 1시 10분경에 원저우 터미널에 도착했다. 오는 길이 사고난 구간이 있어 잠깐 차가 막히기도 했다. 이우만큼 부자가 많다는 원저우라더니, 도착한 터미널 건물 외형이 아주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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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루터인지, 사금을 캐는 채석선이지 아니면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지 알 수 없는 미확인물체. | |
아침을 늦게 먹은 탓에 바로 신발 도매상가로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 이우는 택시 기본요금이 5원인데 반해 원저우는 2배 비싼 10원이었다. 택시기사를 통해 알아보니 원저우에는 2군데의 신발도매상가가 있단다.
신발이 워낙 유발한 원저우라 잔뜩 기대를 하고 첫번째 도매상가에 내렸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데는 몇분 걸리지 않았다. 문을 닫은 가게가 많아 주위에 물어보니 장사가 안 되어서 그렇단다. 제품은 이우 소상품성과 비슷했으며, 가격은 이우보다 오히려 비쌌다.
서둘로 2번째 도매상가로 출발했다. 입구에 [온주신발성]이라고 적혀 있어 이곳이 진짜구나 속으로 여겼지만 여기는 오히려 첫번째보다 더 못했다. 상심이 커서 그런지 점심 식사도 비싸기만 하고 맛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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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도착한 신발도매상가. 제품은 이우와 비슷하나 가격은 오히려 비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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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로 간 신발도매상가. 첫번째보다 더 작고 나은 점이 없었다. | |
마지막 희망을 안고 공장단지로 출발했다. 서울 제기동에 한약재를 전문으로 판매해 '서울약령시'라는 별칭이 붙었듯이 원저우 신발공장 입구에는 '신발성'이라고 크게 간판이 붙어 있었다.
신발공단 들어서자 마자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당황했다. 그리고 이내 이곳을 어떻게 일일이 시장조사를 할 수 있을지 하는 생각에 난감해졌다. 6월 말이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쏟아지는 폭염도 견디기 힘들었다. 출장 온 본전 생각에 공장이 문을 닫을 때까지 한군데 한군데 다리품을 팔아서 상품조사를 했다. 공장문을 닫을 때쯤 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철수하고 호텔에 투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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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저우 신발공단. 총2개의 대규모 단지가 있으며 한 단지내에 크고 작은 수백개 업체가 입점해 있다. | |
다음날, 이우에서 인터넷을 통해 알아온 원저우 신발공단 외에 외곽 신발 공단으로 가기로 했다. 마침 한 업체 사장이 시내에 있어 그 사장 차를 타고 그곳으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차가 막혀 가는데 시간이 30분 이상 걸렸다.
시내 신발공단에 비하면 외곽에 있는 그 곳은 공단이라기 보다는 한 마을 전체가 가내수공업으로 신발을 만드는 신발동네정도 되었다. 품질은 떨어졌으며, 가격은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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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물어 가는 집집마다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신발을 만들어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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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그마한 창고 같은 곳에서도 부부가 앉아 신발을 만들고 있었다. | |
이곳에서도 원하는 제품을 찾을 수 없어, 다음날 또다른 신발공단이 있는 원링으로 가기로 하고 원저우 출장을 마쳤다.
저녁에 원저우 시내에 있는 한식당에서 직원과 밥을 먹다가 원저우에 거주하는 한국인 2분과 합석하게 되었다. 이우에는 한국사람이 워낙 많아 한국인을 만나도 별 느낌이 없지만 이곳에서 만나니 내심 반가웠다. 원저우에는 한국 사람이 3~500명 정도, 한국식당은 3군데가 있다고 한다. 몇주에 다시 한번 더 출장올 때는 이 분들 도움을 받기로 하고 헤어졌다 |